▲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으로 혼란에 싸인 홍콩의 아시아 금융 허브 입지가 유지될 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홍콩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긴장감이 연일 크게 고조되고 있다.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에 영국과 호주는 홍콩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으며 시민권 취득을 열어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미국 하원은 홍콩보안법에 관여한 중국 정책 입안자들 및 이들과 거래한 은행에 대한 제재 방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중국이 강력한 대내외 비난에도 홍콩보안법을 강행한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 계산이 깔려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코로나와의 싸움에 집중하는 틈을 타 수월하게 일국 양제를 지워버리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 GDP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1990년대 27%에서 최근 3% 미만으로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선전,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 새로운 상업 지역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1조 달러(1200조원) 규모의 투자자금이 모여 있는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입지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다.

시장의 전망은 엇갈린다. 미국의 특별 대우 박탈에 따라 홍콩 달러화의 페그제(peg system)부터 홍콩의 금융 허브 입지까지 기존의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가 하면, 중국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홍콩의 금융시장이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홍콩의 금융 허브 입지는 이미 약화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센터 평가에서 홍콩은 2019년 9월 3위에서 올해 3월 6위로 밀려났다.

지오이코노믹스의 로버트 코프 창업자는 CNBC와 인터뷰에서 "홍콩은 중국의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로 변질될 것"이라며 "금융업을 포함해 데이터와 투명한 비즈니스 정보의 중요성이 큰 업종들은 싱가포르나 다른 지역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상공회의소의 조사에서 홍콩에 진출한 1300여개 미국 기업 가운데 80%가 중국의 정치적 움직임이 크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홍콩의 시장 원리가 위협받으면서 해외 자금이 본격적으로 이탈하기 시작하면 홍콩 달러화 가치를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위안화 공매도로 월가의 시선을 끌었던 카일 바스 헤이만 캐피탈 매니지먼트(Hayman Capital Management) 창업자를 포함해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들은 지난 달부터 홍콩 달러화 페그제 붕괴에 베팅하고 나섰다.

홍콩은 지난 1983년부터 달러화와 페그제를 유지하고 있다. 페그제는 미화 1달러 당 7.8홍콩달러 선에서 움직이는 환율은 7.79~7.87홍콩달러의 범위 안에서 등락을 허용하는 제도다. 환율이 상한선이나 하한선에 근접하면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시장에 개입, 페그제를 유지한다.

페그제 운용 이후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여러 차례의 충격에도 잘 버텨오며 홍콩이 국제금융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적 리스크가 홍콩 달러화의 페그제를 크게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종료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카일 바스는 홍콩달러 페그제 붕괴에 전부를 거는 베팅을 할 새 펀드를 조성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옵션 계약을 이용해 홍콩달러 페그제 붕괴에 200배 레버리지 베팅하는 전략이다. 미 달러화 대비 홍콩달러 가치가 40% 급락하면 64배 수익을 얻지만, 페그제가 18개월 안에 붕괴되지 않으면 전액을 잃는 구조라고 한다. 지금까지 모집한 자금이 얼마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바스가 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페그제 유지 여부의 최대 관건은 풍부한 외환 사정과 순조로운 외국자금 유입이다. 현재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4400억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본원통화의 두 배에 해당하기 때문에 유입자금 대비 유출자금 비율(E/I)이 1배가 넘지 않으면 페그제는 유지된다. 하지만 E/I 비율이 1배를 넘기 시작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한 작년 2분기부터 높아지기 시작한 E/I는 한때 3배까지 치솟았다. 홍콩 금융시장에 100달러가 들어오면 300달러가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1990년대 초 유럽 통화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등에서 보았듯이, 페그제가 위협당하면 홍콩달러의 약세를 겨냥한 환투기 세력으로부터 공격당할 가능성이 크다. 페그제가 무너지면 자금 이탈과 실물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의 약점을 파고들어 홍콩 내 자국 예금을 인출하거나 위안화 절하로 맞설 경우 ‘달러 페그제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오증권의 프란시스 룬 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보안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사회적인 정서와 금융시장은 다르다”며 "홍콩은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중국의 지원에 기대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기업이 홍콩에서 비즈니스를 지속하는 한편 기업공개(IPO)를 실시하면 파티는 계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홍콩 최대 부호이자 반중 성향으로 잘 알려진 리카싱 전 청쿵그룹(長江實業集團)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홍콩보안법을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면서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를 줄여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홍콩은 환율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으며 미국이 제재를 가할 경우 중국 본토가 통화스와프 라인을 통해 미국 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홍콩 통화당국은 자본유출의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4월 기준 현지 예금 수준은 상승세에 있으며 홍콩 집값은 2019년 사상 최고치에서 5% 하락에 그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