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미국 증시 불안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공식 판매 가격(OSP) 인하에 따른 여파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밑으로 폭락했다. 

8일(현지 시간) 10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배럴당 7.6%(3.01달러) 급락한 36.76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영국 북해 지역의 브렌트유 11월물은 배럴당 5.3%(2.23달러) 내린 39.78달러에 체결됐다. 미국 금융 정보 업체 다우존스에 따르면, 두 유종 모두 지난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브렌트유의 경우 이날까지 5일 연속 하락했으며, 지난달 말 이후 10% 이상 떨어졌다.

미국 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으로 갑작스러운 조정이 일어나면서, 유가 역시 강한 하방 압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됐기 때문이다.

이날 나스닥 지수는 장 중 한때 4% 가까이 급락했다. 올해 들어 테슬라와 애플을 주축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던 기술주들은 최근 투매 현상으로 하강 국면을 맞았다.

또한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들이 겹치면서, 유가 하락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공식 판매 가격(OSP) 인하가 그 방아쇠를 당겼다. 사우디의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는 다음 달 아시아와 미국에 수출하는 원유 가격을 전격 인하했는데, 이 같은 결정에는 석유 소비의 회복세가 전체적으로 둔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행 등 이동이 증가해 연료 수요의 성수기로 꼽히는 '드라이빙 시즌'이 끝난 점도 원유 수요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키우고 있다. 통상적으로 9월 첫 번째 월요일인 미국 노동절이 드라이빙 시즌 종료 시점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아울러 미국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위축된 원유 수요가 완전히 회복되려면 3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또 전기 자동차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원유 수요가 줄어들면서, 유가는 오는 2030년 고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중 갈등의 첨예한 전개 양상도 유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염두해 지속적으로 중국에 압박을 가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인 지난 7일 노동절 기념 연설을 통해 중국과의 모든 비즈니스를 끊겠다는 '디커플링'을 다시 언급했다.

또 미 행정부가 중국 최대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에 반도체를 납품하는 중국 SMIC를 거래 제한 기업 목록인 '블랙 리스트'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잇따라 보도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경제 압박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원유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 일로에 들어서면서, 시장의 우려 또한 가중되는 모양새다. 미국 에너지 컨설팅 업체 리스태드에너지의 애널리스트인 파올라 로드리게즈 마시우는 "이날 유가 폭락은 원유 수요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아진 것을 나타내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한편,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주요 10개 산유국)가 오는 17일 원유 감산 관련 회의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