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덕호 기자] 한동안 멈춤이었던 국내 유통업계 강자 신세계그룹 승계작업이 재가동됐다. 키(Key)를 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분 증여 나섰기 때문이다. 이로써 '남매경영'이란 큰 틀에서 차분히 경영권 승계를 진행해온 신세계家의 본격적인 '남매경쟁'이 시작됐다는 시선이 나온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8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에게 각각 이마트(139480)와 신세계(004170) 지분 8.22%를 증여했다. 정 부회장이 증여 받은 지분은 3244억원(28일 종가 기준), 정 총괄사장 증여 지분은 1688억원이다.

이번 증여로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은 각각 이마트 지분 18.55%, 신세계 지분 18.56%를 보유, 각 계열사 최대 주주로 올랐다. 두 남매의 증여세 합만 2949억원으로 추산된다.

10여년 남매 경영능력 검증 마침표? 남매 분리경영 퍼즐 '완성'

한동안 '안갯속'으로 점쳐졌던 신세계그룹 승계 청사진은 지난 2011년 표면화됐다. 당시 그룹은 이마트를 인적분할하며 남매의 분리 경영 사전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2016년 정용진, 정유경 두 남매는 각자 보유한 이마트와 신세계 주식을 맞교환하며 '이마트=정용진' '신세계=정유경' 구도를 만들었다.

 

자녀들끼리의 지분정리를 끝냈지만, 이후에도 어머니인 이 회장은 승계 핵심인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지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재계는 이를 두고 분쟁 소지를 없애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동시에 남매 경영능력을 시험대에 올렸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그동안 두 사람은 부단히 경영능력을 입증해왔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 및 계열사(신세계프라퍼티, 신세계푸드, 신세계조선호텔) 등을 담당하며 유통, 호텔, 식음 사업에 집중했고,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백화점, 신세계인터내셔날(패션), 신세계사이먼(아웃렛), 신세계디에프(면세점) 등을 통해 백화점, 패션, 화장품, 면세점 분야에서 역량을 펴고 있다. 

다만 2016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경영 성적표만 본다면 정 총괄사장이 우세한 상황이다. 정 총괄사장이 패션·화장품·백화점 등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 온 영향이 컸다.

실제 정 총괄사장이 이끄는 백화점 사업(신세계)은 지난해 매출액 6조3937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23.3%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은 4681억5464만원을 기록, 전년 대비 17.8% 늘었다. 계열사 신세계디에프는 2018년 1조7870억원이었던 매출이 2019년 2조8130억원으로 급상승했다. 영업이익은 360억원에서 1180억원으로 수직 상승중이다.

신세계강남점을 중심으로 백화점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연결회사들도 호실적을 낸 결과다. 명품 브랜드 유치, 화장품 브랜드의 성공적인 론칭 등 본연의 사업에서 성과를 냈다.

반면, 정 부회장이 담당한 유통주력 계열사 이마트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매출액은 2018년 13조1480억원에서 2019년 13조1550억원으로 올랐지만 이 기간 영업이익은 4890억원에서 2510억원으로 급감했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SSG닷컴은 점진적 실적 회복을 보이고 있으나 그룹 유통사업부문 전체 매출 10% 수준에 그칠 정도로 비중이 낮다. 새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지만 신세계조선호텔의 호텔 확장, 유통 사업 투자액 증가 등 돈 쓸 일이 적지 않다. 

후계구도 '안정'…그룹 분리 수순 예상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지분 증여로 정용진, 정유경 두 남매의 후계 구도가 안정화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각각의 계열사 지분을 20% 가까이 인수했고, 이에 상속 또는 경영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는 평가다. 승계구도 또한 복잡한 지분정리 작업을 거칠 필요가 없다.

과거 재계는 양사 최대 지분을 거머쥐던 이 회장 선택에 따라 변동이 있을 것이란 시선과 경영 성과가 뚜렷한 이에게 몰아줄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번 증여로 남매간 분리경영을 안정화함으로써 신세계의 승계 작업이 퍼즐이 완성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신세계그룹은 지난 2016년 이후 정 부회장의 이마트 계열, 정 총괄사장의 신세계계열로 분리경영이 진행중인 상황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남매간 그룹 후계 구도가 향후에는 신세계그룹의 정식 계열분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신세계그룹 정기 인사다. 정 부회장은 2006년 부회장에 오른 뒤 2009년부터 경영분리가 있기 전까지 신세계그룹 부회장으로써 사실상 그룹을 총괄해 왔지만, 국내 유통 빅3중에서 오너 2세 중 유일하게 회장 승진을 남겨둔 상태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지난 2008년 부친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유통가에서는 가장 먼저 회장직에 올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2011년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은둔형' 경영자로 꼽혀왔던 정 총괄사장 역시 지난 2015년 12월 백화점 총괄사장에 오른데다 이 회장이 올해로 77세인 점을 감안하면, 정 부회장의 승진인사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2016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만든 지분 승계 등 그룹 구도 형성은 계승되고 있다”며 “이번 지분 승계로 분리경영 기조가 공고해진 만큼 다음달 예정된 신세계 그룹 정기인사에서 총수일가의 승진도 예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