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최근 국내 금융사에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해외부동산 공모펀드의 손실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이들 판매사에 대한 불완전판매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년 말 기준 금융회사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금융사가 설정한 임대형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는 총 21개다. 이 가운데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는 8개(9333억원)로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집계된 21개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의 설정액은 2조2835억원이며, 이 중 개인의 투자금액은 80%에 달하는 1조9000억원이다.

임대형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는 빌딩·상가 등 부동산에 투자한 뒤, 해당 자산의 임대료와 매매차익 등에서 나온 이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펀드다.

2016~2019년 부동산 호황기에는 이같은 해외 부동산 대체 투자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불거진 글로벌 고금리 기조와 미국·유럽 내 재택 근무 증가로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최근 해당 펀드의 손실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4분기 미국 오피스의 공실률은 19.6%로 역대 최고치(19.3%)를 경신하는 등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가격 하락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올해 만기를 앞둔 일부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급락하며, 배당이 밀리거나 만기가 연장되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만기를 맞는 펀드 8개 중 '한국투자 벨기에 코어 오피스 2호'는 배당금을 유보했고, ‘한국투자 밀라노1호'는 지난해 11월 만기를 3년 연장했다.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1호' 역시, 수익자총회를 통해 신탁 계약 기간을 5년 추가 연장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내년 이후 만기인 펀드 21개 중에서도 '미래에셋 맵스 미국11호'에서 배당 유보 사유가 발생했으며, '한국투자 룩셈부르크코어 오피스'는 이미 배당이 유보된 상태다.

이밖에 '미래에셋 맵스 미국 9-2호', '하나 대체투자 미국LA 1호' 등 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자산을 매각해, 이미 운용사의 손실이 확정된 사례도 있다.

문제는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의 경우, 후순위 채권자에 해당돼 펀드 청산 시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는 60%의 현지 은행 선순위 대출과 40%의 투자로 진행되는데, 1순위 채권자인 현지 은행들이 손실 확정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후순위 채권자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 = 연합뉴스
여의도 증권가. 사진 = 연합뉴스

'구제 펀드' 리파이낸싱 논의도 지지부진 

일각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하기 위한 ‘리파이낸싱 펀드’의 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파이낸싱은 기존 대출의 만기가 다가오기 전, 신규 대주단으로부터 새롭게 대출을 받아 기존 대주단에 돈을 상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윤창현 의원은 “해외 부동산의 1순위 채권자는 현지 은행이고, 국내 자산운용사의 공모펀드는 후순위 채권자”라며 “LTV(주택담보대출비율) 60% 건물이 20% 가격 하락시 공모펀드의 손실률은 50%에 이르는 만큼 제2의 펀드사태를 예방하는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업계 내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협회 관계자들은 진척 사항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못하는 상황이다. 

해외 부동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리파이낸싱을 위해 선뜻 수천억의 자기 자본을 쏟아붓겠다 나설 수 있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 오피스 가격 하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리파이낸싱을 한다고 해도 수익을 복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며 “투입해야 하는 자금도 한 두푼이 아니라 기관들이 발 벗고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아닌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논의가 지지부진한 원인 중 하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앞서 국내 부동산 PF와 관련해 조성된 부동산 구제 펀드에 LH, 캠코 등 공기업들이 나섰던 이유는 정부에서 추진한 사업이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금투협의 눈치를 보는 기관은 아무도 없고, 되려 협회는 회원사들의 이익을 대변해줘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압박감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사진=금융감독원
사진=금융감독원

일부 펀드 투자자, 금감원에 민원 제기 

뾰족한 대책안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투자자들은 “피해 손실의 책임을 운용사가 져야 한다”며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자산을 매각한 미래에셋 맵스 미국 9-2호의 투자자들은 “운용사가 빌딩을 싸게 팔아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 중이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Dallas) 지역의 오피스 빌딩에 투자한 해당 펀드는 지난 2016년 일반 개인투자자 자금 3000억원을 조달한 바 있다.

지난해 미래에셋운용은 해당 부동산을 매입가보다 달러 기준 약 30%, 원화 기준 20% 낮은 가격으로 미국계 기관에 팔았다. 2016년 설정 당시 9786억원으로 투자했던 부동산을 당시 환율 기준 약 7879억원에 매각한 것이다.

이에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만기연장은 리파이낸싱에 필요한 추가투자금액 및  이후 배당가능성, 향후 시장전망 및 자산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장관계자는 “만기만 계속 연장하다가 혹여나 EOD(채권자가 채무자에 만기 전 자금 회수를 요구하는 것) 상태가 되면, 수익자분들에게 투자금조차 돌려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 부동산 펀드의 수익률을 제때 알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만기 연장을 시도 중인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1호는 지난해 12월 말 –0.9%로 집계됐던 운용 수익률을 한달 만인 1월 말 –44%로 급격히 확대한 바 있다.

운용업계에서는 대체투자의 특성상, 손실인식에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부동산은 실시간으로 가격이 나오는 주식과 달리 시기마다, 위치마다 가치가 달라지는 만큼 값을 매기기가 어렵다. 때문에 대다수 운용사가 위탁사에 돈을 주면서 평가 감정을 맡기는데, 위탁사에서 통상 1년에 1번씩 평가를 진행한다”며 “이에 어쩔 수 없는 시차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미래에셋 맵스 미국 9-2호' 투자설명서에 명시된 문구.
사진='미래에셋 맵스 미국 9-2호' 투자설명서에 명시된 문구.

금감원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 판매 과정 모니터링중"

이에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 투자 과정 점검에 나선 상태다.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건에 대해서만 모니터링하며, 기관 투자가의 자금이 대다수인 사모 펀드는 점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본원. 사진 = 김호성 기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본원. 사진 = 김호성 기자.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와 관련해 진행중인 것이 검사는 아니다. 현황을 보기 위한 점검일 뿐”이라며 “일반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한 사항들이고, 주로 증권사나 은행에서 판매했기 때문에 검사 1,2,3국에서 종합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미 점검이 들어간 상황이라 개별 사 및 진행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언급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같은 불완전판매 공방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모펀드의 경우 상장 시 투자자에게 청약 권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ELS 대비 상품의 구조도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LS에 비해 부동산 공모 펀드는 구조가 정말 쉽다. 은행에서 예금인 줄 알고 가입하셨다는 고객들의 케이스와는 다르게, 투자자의 자기 책임의 원칙이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고 부연했다.

또다른 증권사 관계자 역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는 ELS 사태와는 사안이 완전 다르다. ELS는 은행 창구에서 주로 판매한 상품인 반면, 공모펀드는 고객 분들 대다수가 투자 경험이 어느 정도 있으신 분들이 많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며 “불완전판매 이슈가 나올 만한 여지가 적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