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인천 중구 하버파크 호텔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한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이 주주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현대제철.
26일 인천 중구 하버파크 호텔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한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이 주주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현대제철.

“철강 본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중해나갈 예정이다. 단계적으로 저탄소화된 자동차용 제품 생산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다만 철강 본업 경쟁력 강화 외 대규모 비철소재 사업 확대와 이차전지 시장 진출은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해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한다”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은 지난 26일 열린 현대제철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신사업, 미래 먹거리 투자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철강사들이 신사업, 미래 먹거리 발굴로 분주하다. EU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환경규제, 세계적 경기침체로 인한 전방산업 둔화와 철강 시황 악화를 이겨내기 위해 사업을 다각화하고자 한다.

특히 전기차 보급 확대와 함께 향후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이차전지 산업은 현재 대표적 블루오션 산업으로 손꼽힌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도 하나둘 이차전지 사업부를 신설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는 모양새다. 본신이 철강업인 포스코그룹은 대표적 소재기업 답게 이차전지 소재와 원자재 공급망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신임 회장은 지난 21일 포스코 주주총회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포스코가 도전한 신사업 중 이차전지산업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며 “시장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더라도 지금까지와 같은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반면 포스코와 함께 국내 제철 ‘빅2’의 하나인 현대제철은 오히려 철강 본업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모기업이 현대자동차그룹인 만큼 자동차용 고부가가치 강판과 그린스틸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재무구조 건전화에 집중”

현대제철의 판단의 배경엔 이차전지사업의 막대한 투자금에 대한 부담이 깔려있다. 포스코그룹은 사업보고서를 통해 향후 3년간 그룹 전체 투자액의 절반가량을 이차전지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포스코그룹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친환경 미래소재 부문 투자 예정액은 약 4조7000억원으로, 3조7760억원 투자가 계획된 철강 부문을 상회한다. 지난해 포스코그룹의 친환경 미래소재(이차전지)부문 매출액이 4조8220억원임을 감안하면, 아직까지는 투자 대비 마진이 크지 않은 초기시장임을 알 수 있다. 현대제철로서는 조단위 투자금이 필요한 데다, 성장성은 크지만 단기적 리턴이 보장되지 않은 이차전지사업에 섣불리 뛰어들 수 없다는 입장인 셈이다.

현대제철과 서강현 사장이 재무구조 건전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 사항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25조9148억원, 영업이익 7983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외부 차입금은 9조7000억원 상당으로, 부채비율은 80%를 기록했다. 포스코홀딩스(69%) 등에 비하면 다소 높다. PBR(주가순자산비율)도 0.2이다. 자산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 서강현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재무구조를 위협하는 미래투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제철의 부채비율은 2021년 102.86%에서 2022년 92.39%, 2023년에는 80.65%로 매년 10% 이상씩 개선되고 있다. 재무건전성 개선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만큼,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제철의 연간 부채비율 변화 추이. 2020년 이후부터 가시적으로 개선 중이다. 사진=네이버증권 갈무리
현대제철의 연간 부채비율 변화 추이. 2020년 이후부터 가시적으로 개선 중이다. 사진=네이버증권 갈무리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의 존재 역시 현대제철의 투자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제철은 조선·건설·자동차 등 철강 전방산업을 여럿 영위하는 현대그룹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기존 독점적 공급자였던 포스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그룹 내 자체 철강 공급망을 담당한다.

현대그룹이 현대자동차그룹과 HD현대 등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여전히 현대자동차와 현대건설 등 주 고객사가 건재하다. 이런 확실한 네트워크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이차전지라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반면 포스코그룹은 그룹사의 근본이 철강업이다. 여전히 그룹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자연스레 철강 시황에 그룹사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신사업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양사의 입장 차가 지금 같은 투자 방향성 차이를 든 것으로 해석된다.

“철강부터 확실히”

현대제철은 신사업 대신 ‘철강’과 ‘탄소중립’에 대한 투자만큼은 아끼지 않겠다고 확언했다. 그룹사 내 완성차 공급망의 탈탄소화와 더불어 그룹에서 추진하고 있는 UAM(도심항공교통), 로봇 등 미래모빌리티 소재산업 전방위에 참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LNG 자가발전 설비에 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2028년 충남 당진에 LNG자가발전 공장 설립을 목표로 한다. 철강 탈탄소화를 위한 본격적 투자다. LNG자가발전설비를 이용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현행대비 18%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부터는 LNG에 수소를 섞어 발전하는 수소혼소발전으로 오염물질을 더 줄일 예정이다.

기존 주력제품인 조선용 후판과 자동차용 강판 생산능력도 확대한다. 1후판공장에 신규 열처리 설비를 도입해 열처리재 생산량이 연간 15만톤에서 30만톤으로 두 배 늘어날 예정이다. 신규 설비는 올해 10월 시운전을 앞뒀다. 고급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는 당진제철소 2냉연공장에서는 3세대 강판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3세대 강판은 기존 강판의 초고장력 강도를 유지하며 성형성을 향상시킨 고부가가치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