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이해와 타협을 잘해야 가장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형성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오묘하고 이상한 관계라서 남들하고는 이해와 타협이 잘 되다가도 막상 부부가 싸우게 되면 이해와 타협보다 감정이 앞서며 또 배우자의 행동이 이해조차 되지를 않는다.

서로 각자의 이야기만 중점적으로 하다 보니 타협보다는 벽에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랑과 신뢰가 아무리 깊은 부부라도 마찬가지다. 싸우지 않을 것 같은 부부도 결국 다른 부부와 똑같이 싸운다. 단지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부부는 싸우면서 살게 되어 있다. 평생 부부가 싸우지 않고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부는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참고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부부 싸움의 결정적인 핵심은 기대감 때문이다.

부부라는 것이 항상 기대하는 것보다 못 미치는 경향이 있으며 문제는 그것을 참지 못하는 데 있다.

가족이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좀 더 좋은 모습만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시작했건만 같이 생활하면서부터는 사랑하는 시간보다 서로의 약점에 민감하고 조금이라도 손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평생 배우자와 싸움을 하는 것이다.

이해타산과 상관없는 관계이면서 무의식적으로 손해와 이익을 찾고 있어서다.


순정을 다 바치는 아내
에블린 드 모건의 <카스모스와 하르모니아>

<카스모스와 하르모니아>, 1877년, 캔버스에 유채, 102×43,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결혼식 주례사의 기본은 사랑으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고 산다는 것은 굉장한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부부가 평생 서로에게 만족하고 산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다른 사랑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배우자로서 최고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자기 속으로 난 자식도 미울 때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미울 때가 없다면 그 사람이 부처님이다.

하지만 기적이 없다면 세상 살맛 안 나는 것처럼 사랑으로 허물을 감싸주는 천사 같은 배우자는 있다. 그렇기에 결혼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평생 남편 곁에 있고 싶었던 아내를 그린 작품이 모건의 <카스모스와 하르모니아>다.

이 작품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중의 한 장면을 표현했다. 욕망을 참지 못한 제우스신에게 여동생 에우로페가 납치당하자 여동생을 찾기 위해 카스모스는 고향을 떠나 떠돌다가 전쟁의 신 아레스의 소유였던 뱀을 죽이게 되었다.

분노한 아레스 신은 카스모스에게 자신을 8년 동안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8년이 지나자 아레스 신은 순종적인 카스모스에게 자신의 딸 하르모니아를 선물로 주기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은 카스모스가 죽인 뱀 때문에 비극이 찾아왔다. 자식들이 비참하게 죽자 카스모스와 하르모니아는 그들의 왕국인 테베를 떠나 방랑한다.

어느 날 카스모스는 자식이 죽은 것을 한탄하며 자신에게 닥친 재앙이 뱀을 죽인 거라면 차라리 내가 뱀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을 하자 갑자기 카스모스가 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뱀으로 변하는 카스모스를 보자 하르모니아는 신들에게 남편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고 간청을 한다. 신들은 하르모니아의 소원들을 들어주었고 뱀으로 변한 두 사람은 해로한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호숫가 꽃밭에 서서 하르모니아는 몸을 휘감고 있는 뱀으로 손으로 쓰다듬고 있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하르모니아가 바위산보다 크게 그려진 것은 그녀가 신의 자손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바위산은 험난한 운명을 암시한다. 꽃밭에 서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을 상징한다.

에블린 드 모건은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엄격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에로티시즘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하자 비난을 피하기 위해 신화에서 소재를 찾았다.


속임수를 쓰는 아내
장 밥티스트 그뢰스의 <속임을 당한 장님>

<속임을 당한 장님>, 1755년, 캔버스에 유채, 66×52, 러시아 푸시킨 미술관 소장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만 그것은 부부의 연을 처음 맺었을 때와 자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결혼 생활이 오래될수록 자신의 감정만 이해받기를 원해 몸은 같이 있지만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

부부로 사랑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배우자가 이상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맺어져도 마음 하나 딱딱 맞추지 못하는 게 결혼인데 하물며 사랑 없는 정략결혼에 일심동체를 기대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천국에 가는 것과 같이 힘든 일이다.

정략결혼이라는 자체가 꿈같은 사랑을 접고 현실을 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충실하지만 사랑 앞에서 몸과 마음이 흔들리는 아내를 그린 작품이 그뢰스의 <속임을 당한 장님>이다.

작은 방에서 늙은 장님은 꼭 잡은 아내의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있고 남편에게 손이 잡혀 있는 아내는 지하실에서 올라오고 있는 젊은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다. 젊은 남자는 여자의 남편을 발견하고 놀라서 들고 온 맥주잔을 쏟고 있다.

이 작품에서 아내를 외면하고 있는 늙은 남자의 시선은 장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아내와 젊은 남자의 붉은 뺨은 두 사람이 딴 곳에서 만나 함께 술을 마셨다는 것은 암시한다.

아내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는 것은 늙은 장님이 정욕에 못 이겨 젊은 여자를 돈 주고 사왔다는 것을 암시하며 붉어진 얼굴은 정욕을 암시한다.

두 발을 모으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자세는 장애 때문에 원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

나무 기둥에 걸려 있는 옷과 여자의 속옷 차림은 젊은 남자와의 정사를 암시하며 여자의 시선은 남편 몰래 간부를 끌어들인 두려움을 나타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놋쇠 주전자와 뚜껑은 여자의 게으름을 암시한다.

장 밥티스트 그뢰스의 이 작품은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1755년 살롱전에 출품되어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았다.